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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11. 韓외교, 실용·자율 공간 확장 위한 '新 거리 감각' 필요

Author
관리자
Date
2025-05-2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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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싱가포르, 미국 관세 정책 비판 속

안보·기술 협력 실무적 유대 강화

中, 인접국 외교 강화 美 영향력 견제

韓, 유연하고 전략적 거리 조정 요구

복잡하고 어지러운 정세 변화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를 통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은 일시적인 무역 갈등이 아니라, 세계 질서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자유무역체제를 흔들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뿐만 아니라 기술패권과 지정학의 융합을 심화시켜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변화를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의 전환으로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국가가 존재한다.

▲ 지난 5월 5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스티브 괼러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과 회담하고 있는 자키 빈 모흐마드 싱가포르 국방부 수석 장관. /출처=미국 태평양함대 홈페이지

 

▲싱가포르의 대미 외교 주목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싱가포르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독특한 외교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싱가포르의 응엥헨 국방장관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이제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미지는 '해방자'에서 '질서 교란자', 나아가 '임대료를 요구하는 집주인'으로 변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관리 방식이 비용과 보상 중심의 거래적 방식으로 전환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3월 싱가포르 의회에서는 비비안 외교장관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다자주의를 포기하고, 관세와 기술 통제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4월 로렌스 웡 총리도 의회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이 스스로 주도하여 만든 WTO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정책이 다자주의 무역 질서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싱가포르 지도자들이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하며 미국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이어가는 것은, 단순한 강대국 견제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 속에서 자국의 전략적 입지를 재정립하려는 명확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이례적 외교 행보는 '전략적 거리 조정'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신뢰를 유지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계산된 외교다.

즉, '미국에 대한 공개적 거리 조정과 비공개적 결속'이라는 역설적 균형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규범적 목소리를 높여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안보와 기술 협력 분야에서는 실무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안보 패키지 압박 속에서도 전략적 자율 공간을 확보하는 효과적 모델로 볼 수 있다.

예컨대, 5월 초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스티븐 쾰러는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양국 간 해군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특히 창이 해군기지에서의 미 해군 함정 정박 및 군수 지원 등 기존 협력 체계를 재확인하고, 향후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4월에는 양국 국방부가 중간국방점검(Mid-Term Defense Review)을 실시하며 AI, 우주, 방위산업 회복력 등 혁신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논의한 바 있다. 싱가포르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잘 인지하고 이를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 외교를 강화하는 중국

한편 베이징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무기화로 인해 미 동맹국들의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인접국 외교를 강화함으로써 외교적 우군을 확보하려는 새로운 외교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중국공산당은 '중앙 주변공작회의'를 개최하고 인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방침을 설정했다. 시진핑 총서기를 비롯해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이례적인 고위급 회의로, 2013년 이후 처음 열린 최고위급 회의라는 점에서 중국 외교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주변국과의 공동운명공동체 구축'을 강조하며, '아시아 안보모델' 구상을 제안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공급망 협력 및 안보 협력을 포함하는 전략적 외교 확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시점을 포착해, 지역 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근 시진핑의 외교 행보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을 포괄하고 있다.

 

▲한국 외교의 선택: 새로운 거리 감각 발휘하며 연성 자율성 추구

오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시 주석이 방한하게 된다면, 이는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방문으로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시진핑의 방한은 동북아 외교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외교적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외교는 더 이상 '대미 동맹에 대한 충성도 테스트'와 '대중 경계심' 사이에서 소모적 줄타기를 지속할 여유가 없다. 동맹의 압박과 굴절을 완화할 거리를 유지하고, 협력의 실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보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거리 조정이 요구된다. 거리 조정의 방향성은 미국에 대해서는 '의존하지 않되 신뢰를 유지하는 외교', 중국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되 마찰을 피하는 외교'이다.

전환의 시대에 한국 외교가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질문의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략적 공간을 만들 것인가'로 질문을 전환해야 한다. 실용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외교 공간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 한국 외교가 '전략적 거리 조정의 미학'을 구현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장영희 박사는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립대만대 국가발전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연구 분야는 양안 관계와 중국 대외관계이다. 저서로 <바이든 시기 양안관계의 지속과 변화>,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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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9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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