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8. 한·중 청년실업 '동병상련'…난제 함께 풀어야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한국 'N포세대'·중국 '쓰레기 시간'
젊은 세대 사이 체념·자조적 유행어
실업률 급증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세대·계급간 격차 고착화로 불평등
'공동부유' 강조하지만 공염불 그쳐
지구화된 자본주의 속 유사한 어려움
양국 청년간 반목 넘어 공동대응 필요
▲ 한국과 중국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인천과 광둥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많은 청년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사진=인천일보DB·중국 광둥성정부 홈페이지
▲중국 청년들의 자조적 유행어
최근 중국에서는 청년실업과 관련한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0년 전후로 유행한 '내권(內卷)'은 본래 학문적 맥락에서 중국의 경제 발전이 질적 전환 없이 양적 팽창에만 머무르며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했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극심한 경쟁과 과로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말로 전환되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탕핑(躺平)'은 '드러눕는다'는 의미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소극적 저항을 표현한다. 과도한 경쟁과 노력에도 보상이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체념이 담긴 말이다.
최근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실업 문제를 반영하는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다. '란웨이(爛尾)'는 본래 건축이 중단된 '부실 공사 건물'을 의미하며,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자금난으로 방치된 건물들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용어는 곧 고등교육을 마쳤음에도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을 가리키는 '란웨이와(爛尾娃)'로 확장되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라 여기며, 그것을 '쓰레기시간(垃圾時間)'이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원래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가 일찍 결정된 뒤 소모되는 시간(garbage time)에 빗댄 표현으로, 중국 청년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일찍 패배해 그 뒤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탄하게 된 것이다.
▲ 2023년 12월 중국 당국이 청년 실업률 통계 방식을 바꾸고 나서 하락하던 중국 16~24세(학생 제외) 실업률은 몇 개월 후 다시 반등하여 2025년 3월 기준 16.5%에 달한다.
▲심각한 청년 실업, 미진한 해법
몇 년 전부터 청년 실업은 중국의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2023년 5월과 6월에 공식 청년 실업률이 2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자 중국 당국은 당분간 청년 실업률을 발표하지 않다가 집계 방식을 바꿔 새로이 실업률을 발표하기도 했다. 재학생을 제외시켜 통계 수치를 낮추는 방식이었는데 이것도 계속 증가해서 2024년 7월 17.1%까지 올랐다. 당시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을 조사했던 한 중국 대학의 연구팀은 실제 도시 지역 청년 실업률은 46%가 넘을 것이라고 밝혀 큰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중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세대 간, 계급 간 격차가 고착화되고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분배 정책을 통해서 내수를 회복하고 복지 체계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당국에서는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수사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공동부유는 1차 분배(임금과 일자리), 2차 분배(조세와 복지), 3차 분배(자발적 기부)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 실현된 것은 대체로 3차 분배에 국한된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일부 플랫폼 기업들이 기부에 참여했지만, 노동시장 개혁이나 누진적 조세체계 도입, 부동산세와 같은 구조적 재분배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간접세 중심의 조세제도와 상속세 미비, 부동산 보유세의 실험적 시행 등은 실질적 불평등 해소에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란?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는 뜻을 담은 시진핑 집권기 중국이 내건 핵심 국정 슬로건으로, 시장 중심의 1차 분배, 정부 주도의 2차 분배, 민간의 기부에 기반한 3차 분배로 구성된다. 그러나 실질적 재분배를 실현할 핵심 수단인 1·2차 분배의 제도 개혁은 미흡한 반면, 기업 등의 선의에 기댄 기부 등 3차 분배가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어, 이는 분배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고 구조적 불평등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 한국과 중국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인천과 광둥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많은 청년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사진=인천일보DB·중국 광둥성정부 홈페이지
▲서로 닮아 있는 한중 청년들의 어려움
현재 한중 양국에서 청년 담론과 관련한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들의 삶은 무척 닮아있다. 중국의 '4불청년(四不靑年)'은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으며, 집을 사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일컫는다.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행했던 'N포세대'와 완전히 같은 뜻이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3포세대에서 취업, 내 집 마련까지 합쳐 5포세대로 일컬어지다가 결국 건강, 인간관계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N포세대로까지 불린 것이다. 중국의 4불청년도 이제는 10불청년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조만간 한국처럼 N불청년으로 불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최대한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하는 행위를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영끌'이라고 표현해왔다. 중국의 부동산 상황도 다르지 않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끌어모은 것을 '우공상환(愚公還貸)'이라고까지 부른다. 대를 이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사자성어를 빗대어 대를 이어 갚아도 대출금을 다 못 갚을 지경이라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유행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처지의 청년들, 난제 함께 풀어야
중국과 한국의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갈등과는 무관하게 지구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거의 유사한 구조적 위치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를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 간의 편견과 반목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미 기후위기, 인종주의, 혐오와 차별, 불평등 등의 의제는 한 나라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며, 다른 세대보다도 더 긴 미래를 살아내야 하는 청년 세대들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남석 교수는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대 중국의 체제 변동과 대중 저항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공저),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차이나 붐>, <제국의 충돌>, <방법으로서의 글로벌 차이나>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중국의 신자유주의 논쟁과 그 함의」, 「1989년 천안문 사건과 그 이후」, 「시진핑 시기 중국의 청년 노동 담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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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7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