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7. 흔들리는 국제경제질서, 한국이 설 곳은 어디인가
[이현태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트럼프 상호관세 여파 전 세계적 혼란
美, 통화 질서 재편 '마라라고 협정' 구상
中, 강력 반발…'브릭스' 중심 대안 모색
韓, 양자택일 아닌 실용적 전략 필요성
▲ 2025년 4월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이라 명명하며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는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안겼다. 미국은 무역을 넘어 통화와 금융 전반에 걸친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사진=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소셜미디어 'X'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의 보편 관세를 전격 부과했다. 동시에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해 온 중국, 아세안, 한국, 일본 등 주요국을 상대로 최고 50%에 달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세계는 예상치 못한 관세 폭탄에 충격을 받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급변했다. 주가와 신흥국 통화가 급락했으며 미국 내에서도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던 중에 4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90일간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상호관세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일관성 없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트럼프의 롤러코스터식 관세 정책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맞불 작전에 나선 중국은 대미 관세를 125%까지 올리면서 미중의 관세전쟁에 불이 붙었다. 물론 이는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중국은 수출 감소에 따른 경기 둔화에 직면할 수 있기에, 일정 수준의 협상이나 관세 완화 합의가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트럼프 정부의 '마라라고 협정(Mar-a-Lago Accord)' 구상
트럼프는 왜 이렇게 과격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가? 이 조치의 배경은 미국의 구조적 위기다. 이를 다룬 문서가 2024년 11월 발표된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의 보고서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이다. 보고서는 쌍둥이 적자, 제조업 붕괴, 고평가된 달러 등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거시 전략을 제시한다. 미국은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기축통화국 역할을 해왔지만, 이로 인한 고평가된 달러, 무역적자, 제조업 쇠퇴, 재정적자의 악순환을 초래했고, 중국의 부상은 이를 안보 문제로까지 확장시켰다. 이에 보고서는 기존 통화·무역 질서의 재설계를 제안한다. 관세는 단순히 보호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제조업 유치 및 세수 확보 수단이다. 수입품 가격 상승은 국내 생산·투자를 촉진하고, 관세는 협상 카드로도 활용돼 미국의 요구(외환시장 규율, 비관세 장벽 완화, 방위비 증액 등)를 수용하는 국가에 감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보고서는 고관세 이후 통화·금융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외환시장 개입 억제, 단기 미국채 보유 억제, 장기채 전환 유도 등을 통해 달러 수요를 안정적으로 유도하고 점진적인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한다. 이 전략은 '마라라고 협정'이라는 새로운 통화·무역 틀로 구체화된다. 이는 1985년 플라자합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단순한 달러 약세 유도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통화 질서의 재편을 목적으로 한다. 관세, 국채, 외환 규율 등을 포괄하면서 미국 경제의 균형 회복을 도모한다. 특히 이 전략은 형식상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배제를 전제로 한다.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외환시장 개입과 국채 보유 축소, 위안화 국제화를 계속 추진하면서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EU, 일본, 한국, 캐나다 등 미국의 우방국이나 대미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참여 가능성이 높다. 즉, 마라라고 협정은 형식상 다자주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동맹국 중심의 신질서 구상이다. 협정의 실현 여부는 미국 내 상황과 외교 환경에 달려 있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인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의 맞불 전략: 관세 보복에서 대안 질서까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은 이런 구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25%의 보복 관세에 더해 희토류와 이중용도(민·군 겸용) 품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도 취했다. 또한 11개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등재하며 압박 수위를 강화했다. 이는 단기 대응이라기보다 트럼프 2기를 겨냥해 사전에 준비된 전략적 반응이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응해 무역·금융 전반에서 병렬적 대안 질서를 구축해왔다. RCEP를 통해 역내 최대 무역권을 주도하고, 일대일로(BRI)를 통해 유라시아·중동·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실물경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여기에 디지털 위안화(e-CNY), 위안화 결제 확대, 자국 결제망인 CIPS를 통해 금융 독립성도 강화하고 있다. 브릭스(BRICS)에서는 공동 준비통화 개발과 비달러 결제 확대를 추진하며, 비서구 연대를 기반으로 제도적 대안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란?
한국을 비롯해 아세안 10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2022년에 발효되었다. 최근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는 가운데, 향후 RCEP이 어떤 영향력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브릭스(BRICS)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 등 5개 신흥경제국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미국과 서구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대응해 다극적 세계질서 구축과 비서구권 연대 강화를 주요 목표로 한다. 2009년 러시아에서 첫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공식 출범하였다.
▲압박 속의 한국, 새로운 길을 설계할 시간
이렇듯 미국의 질서 재편과 중국의 대항 전략이 동시에 전개되며, 한국의 정책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크게 보면 한국이 직면한 도전은 두 가지다. 우선 실물경제 측면에서 산업 공동화 위험이 크다. 미국의 고관세를 피하려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이는 국내 고용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의 미국 투자 러시는 이미 바이든 정부 시기부터 진행됐지만, 트럼프의 정책은 이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 미국 시장을 우회해 제3국에 저가 수출을 늘리면, 한국 기업은 기존 경쟁 품목에서 더 강한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금융·통화 부문의 불안정성이다. 마라라고 협정이 요구하는 장기 국채 보유 전환은 한국의 외환 유동성을 제약할 수 있고, 외환시장 개입 자제 요구는 환율 대응 여지를 줄일 수 있다. 달러 유동성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외환 조달 여건을 악화시키며, 이는 반도체·배터리 등 외자 의존도가 큰 산업에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단칼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한국의 전략은 미중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질서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서 실용적이고 구조적인 전략이어야 한다. 고관세 충격에는 산업별 협상과 생산기지 분산, 통화·금융 질서 변화에는 외환 포트폴리오 다변화, 통화스와프 확대, 유동성 확보 등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한쪽에 일방적으로 기대기보다 양측의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유사한 입장의 중견 개방국들과 연대해 정책적 협상력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격변과 내부 갈등을 우선 뒤로 미루고, 국가 차원에서 이 구조적 전환을 직시하고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할 시점이다. 진짜 중요한 의제를 둘러싼 국민적 논의와 사회적 집중이 필요한 때다.
이현태 교수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에서 학사(중국현대사), 석사(노동경제), 박사(중국경제)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경제 및 한중경제관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시진핑 집권 10년, 중국 경제 회고와 전망」, 「한중 수교30년, 대중 무역의 성과와 한계」 등 다수의 논문 및 저서가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 부연구위원 등을 거쳤고,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현대중국학회 총무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6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