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3. 중국의 '느린 소' 경제전략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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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Date
2025-03-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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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수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올해 신중한 내수 진작 정책 제시안정적인 경기 대응 필요성 강조
국가 전략·안보 분야 전폭적 투자
7350억위안 '양중건설' 투입 예정
수요 부진 속 산업 경쟁력 강화책
한국 직결 '중국식 실험' 예의주시


▲ 지난 3월13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정부는 무분별한 경기부양보다는 재정 건전성과 전략 분야 투자에 방점을 둔 경제운영 방향을 천명했다. /출처=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홈페이지
2023년 봄 이후 중국 경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민간 투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한때 20%에 육박했고, 부동산 시장은 투자와 가격 모두 하락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분기 5.4%의 '깜짝 성장'을 기록하며 연간 성장률 목표인 5%를 달성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유기업 투자가 성장률을 견인했을 뿐, 민간 부문은 여전히 침체 국면에 머물러 있다.
40여 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어온 중국이 이제 정점에 도달했다는, 이른바 '피크 차이나(Peak China)'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2024년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고 올해 경제운용의 방향을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과감한 경기부양보다 재정 건전성과 전략 분야 투자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이다.
▲신중한 내수진작, '느린 소' 전략
올해 중국은 재정적자 비율을 GDP 대비 4%로 상향하고, 통화정책 기조도 '온건'에서 '약간 느슨한' 방향으로 조정했다. 언뜻 보면 적극적인 경기부양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대부분 간접적인 지원에 그친다. 대차대조표 개선형 투자인 것이다. 지방정부 특별채권은 기존 부채 연장을 위한 용도이며, 특별국채의 상당 부분도 국유은행 자본을 보충하는 데 쓰인다.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4조 위안 규모의 인프라 중심 경기부양책을 단행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속철도와 도로망 등 대도시 인프라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지방정부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재정 여력이 크게 위축돼 있다. 과거처럼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경기를 띄우는 방식은 이제 가능하지도 유효하지도 않다.
소비 진작 정책 역시 신중하게 추진되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교체를 장려하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이 시행 중이지만, 보편적인 소득 보조나 재난지원금은 여전히 꺼리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도 중국 정부는 국민에게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처럼 제한적인 소비 진작은 낮은 물가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내수 회복에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는 “미친 소보다 느린 소가 낫다”는 표현을 쓰며, 무분별한 재정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경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전략 산업과 안보 역량에는 집중 투자
반면, 국가 전략과 안보 관련 분야에는 전폭적인 재정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5년 발행되는 초장기 특별국채 중 약 7,350억 위안이 '양중건설(兩重建設)'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는 국가 중대 전략과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 투자를 의미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밝힌 1조 위안 규모의 창업투자유도펀드, 그리고 국유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 펀드 등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에는 화웨이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이는 중국의 서방 기술 보이콧 돌파의 이정표적 사건이다.시진핑 지도부는 2015년 '중국제조 2025' 발표 이후 팬데믹, 미중 갈등,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략 산업 육성과 국가 역량 강화를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곧 발표될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에서도 같은 방향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양중건설(兩重建設)'이란
'양중건설'은 중국 정부가 2023년 말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정책 개념으로, 국가 중대 전략의 실행과 중점 분야의 안보 역량 강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의미다. 이는 반도체, 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식량, 공급망, 국방 등 전략성과 안보적 성격이 결합된 핵심 분야에 선별적·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국가의 자립 기반과 전략적 대응 능력을 강화하려는 중장기 투자 전략이다. 미국과의 경쟁에 대응해 추진되는 국가 주도형 발전 전략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수요부족 국가의 산업경쟁력 강화 가능성과 한계
중국 경제 붕괴론은 언제나 인기 있는 이야기거리이지만 지금 중국 경제의 모습은 붕괴하느냐 마느냐 차원에서 논할 수 없다. 그보다는 수요가 부족한 상태에서 산업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둘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중국의 느리지만 체계적인 대응과 산업 부문에서 나타나는 인상적인 성과들을 볼 때, 거시경제 건전화에 매달려 산업경쟁력을 소진했던 90년대 일본과 다른 길을 갈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중국이 가는 길이 검증된 성공의 길은 아니다. 수요가 부족한 나라의 산업경쟁력이 어떤 식으로 달성가능할지, 그 나라의 사회적 모습은 어떠할지, “중국식” 현대화의 미래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 경제가 당장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론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 부진 속에서도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중국식 실험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일이다. 우리의 산업과 직결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최필수 교수는 세종대학교 국제학부에서 중국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에서 중어중문학(학부)과 경제학(석사)을 공부했으며, 일본 히토츠바시ICS에서 경영학 석사와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을 역임했으며, 중국경제와 산업 및 한중관계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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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3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