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차이나-전환의 시대, 세계와 한중관계] 2. 합종연횡의 시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찾기
Author
관리자
Date
2025-03-21 12:18
Views
68
[민귀식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美 트럼프 '힘의 정치' 中 옥죄기 시작양국 합심 '키신저 전략' 정반대 상황
관세 인상 등 韓 대상 전방위적 압박
유연·실리적 접근 통해 돌파구 모색
춘추시대 정나라 외교 벤치마킹 필요
현실주의적 자세 강대국 사이 존재감
美·中 집중 벗어나 새로운 활로 필요
장기적 동남아시아 진출 전략도 대안

지난 2월 28일 미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압박하는 장면은 국제관계의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의 이익 앞에서는 어떤 가치도 우선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정상회담 'TV 쇼'는 각국이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누구도 그의 행동을 '미치광이 전략'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철저히 계산된 협박이었음이 명백해졌다. 트럼프의 '힘의 정치'는 이렇게 한순간에 관철되었다.
▲패권국의 위기의식과 혼돈의 국제질서
미국의 이러한 극적인 태세 전환에는 중국에 대한 불안감과 경쟁자를 제거하는 정글의 법칙이 깔려 있다. 오바마가 시작한 중국 옥죄기는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 진화했고, 바이든은 가치동맹을 무기로 미래 전략산업 붕괴까지 밀고 나갔다. 트럼프 2기는 마치 패권에 도전하는 국기의 종말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 1971년 방중한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중국총리. 이 회담은 미중 화해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출처=헨리키신저재단 홈페이지
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했던 '키신저 전략'은 50여 년 만에 러시아와 연합해 중국을 봉쇄하는 '역 키신저 전략'으로 바뀌었다. 중국만은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로 전쟁에 허덕이는 푸틴과 러시아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며, 우크라이나는 가차 없이 버린 것이다. NATO 지원을 축소하고 유럽과 거리를 두려는 것도, 일극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면 다극 체제를 수용하되 도전자를 확실히 없애려는 '힘 빠진 미국'의 선택이다. 그 결과, 세계는 바야흐로 생존의 공포 속에서 혼돈과 무질서한 합종연횡이 벌어지는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키신저 전략이란
1970년대 초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미국 국무장관이 주도한 미중 화해 및 협력 구상을 의미한다. 그 핵심은 중국을 미국의 우방으로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반면 역키신저 전략은 이와 정반대로 러시아와의 화해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접근 방식으로,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이 추진하는 강대국 외교 구도에 해당한다.▲G2 극한 대립 속,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FTA로 인해 관세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트럼프는 한국의 관세가 미국의 4배라고 허위 주장을 펼치며 위협했다. 이는 과장된 숫자로 겁을 준 뒤 실리를 챙기는, 과거 방위비 협상의 전형적인 패턴과 다르지 않다. 알래스카 가스관 건설에 한국이 참여한다고 그가 먼저 선언한 것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이러한 압박은 향후 IRA 법에 따른 보조금 폐지를 방위비 증액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기업을 구분하지 않는 트럼프식 협박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제적 압박이 미중 간 한쪽을 선택하라는 요구로 구체화 될 경우, 즉 중국과의 거래를 단절 수준으로 축소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은 극심한 국론 분열과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반면교사 삼아 국제관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념이 아닌 유연하고 실리적인 접근을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춘추시대 정나라에서 배우는 중견국의 생존 지혜
춘추시대는 지금보다 생존이 훨씬 어려웠지만, 중원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약소국 정(鄭)나라는 유연한 현실주의적 균형 외교로 건재했다. 강대국 진초(晉楚) 대결이 치열할 때 정나라는 중립을 지키면서 주변의 제(齊)·송(宋) 등과 연대해 대국 간 갈등을 중재했고, 이를 통해 정나라의 외교력을 활용하며 공존의 길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상업을 장려해 부유했으며 유학생이 몰려올 정도의 높은 문화 수준과 자산(子産)이라는 걸출한 개혁가 재상이 있어 내정이 안정된 것도 국력 이상의 역량을 발휘한 힘이었다. 지금의 국제관계도 본질은 당시와 차이가 없다. 우리도 혼돈의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주적인 판단과 능동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국과 협력하되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 범위를 아세안 등 제3국으로 확장하면서 정나라의 처세를 배운다면,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신활로 모색해야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시련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거대한 시장이자 필수 경제 파트너인 중국을 멀리할 수는 없다. 미중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그 대안이 'China+1' 전략, 즉 동남아시아다. 동남아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미약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장기적인 진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아세안을 포함하면 한국은 춘추시대 정나라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올해 경주 APEC 회의를 계기로 아세안과 협력을 확대한다면, 미중 대결 속에서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아세안에게 한국은 충분히 중요한 파트너이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민귀식 교수는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동아시아학과에 재직 중이며, 중국문제연구소장과 『중소연구』 편집위원장이다. 고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정치로 석·박사를 마쳤다. <중국와 아세안 I·Ⅱ>, 「중국 전통 지식인과 정치·사회권력 관계 역사적 고찰」 등 중국 정치·경제 분야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했다. 현재 인차이나포럼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2734)